모카's 역사기행

유불선 합일사상...일명 현묘지도..

캬라멜모카라떼 2015. 1. 12.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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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최치원 선생이 난랑비 서문에서 밝힌바 있는

 

현묘지도. 풍류도.

 

우리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이름하여 '풍류'다.

 

풍류란 유불선 이 나뉘어지기 전부터 오랫동안

 

우리에게 전승되어온 고유한 신교 문화라 할 수 있겠다...

 

혹자는 삼묘지도 라고도 표현 하고

 

단재께서는 그것의 연원을 단군의 소도에 두고

 

소도는 본래 수두라고 읽는게 맞고, 그 실체를 수두교라고 밝힌바 있다.

 

 

그것이 신교이든 풍류도이든 현묘지도이든 수두교이든...

 

그것은 중요치 않다...본래 그 현묘한 도는

 

종교처럼 형태, 시스템을 갖추었기 보다는

 

그냥 우리 민족의 정신 문화로서 백성을 교화하던데

 

필요했던

 

우리 조상의 도덕이요

 

윤리요

 

철학이요

 

정신문화요

 

종교요

 

생활문화 그 자체 였다고 말해두고 싶다...

 

 

그러나 그것이 형태없이 전해지다 보니 연원이 뚜렷하지 않은데...

 

그것을 부활시킨것이 바로 동학과 환단고기다...

 

동학과 환단고기를 통해 다시 주목 받았고,

 

환단고기는 동학이후 일제강점기 우후죽순 처럼 생겨난 여러 민족종교의

 

정신적 바탕이 되었다.

 

 

환단고기의 저자에 대해서는 논란이 좀 있지만

 

난 그 논란에 개의치 않는다...

 

 

 

 

단군세기 서 에서 특히 세기의 명문을 남긴 이암 선생

 

고성이씨인 이암은 고려시대 충신으로 문하시중을 지냈다.

 

그의 숙부가 각진국사였고 동생은 운암대사로서

 

고성이씨 집안은 큰스님을 배출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백이정으로 부터 글을 배웠는데

 

백이정은 흔히 알고 있는 고려말 성리학의 태두라 할 수 있는

 

목은 이색을 가르친 이제현의 스승이기도 하다.

 

그런 바탕속에서도 그는 한쪽에 치우치지 않았다.

 

그는 고운 최치원선생을 존경해 그의 자를 고운이라 했다.

 

그는 유불선 삼도에 통한 인물이었다.

 

그의 됨됨이는 단군세기 서문 에서 그 진면목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앞서 나오는 목은 이색은 이암의 아들 이강의 친구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색은 이암을 아버지 처럼 여겼다고 한다.

 

우리나라 다도(茶道)를 논할때 다도를 꽃 피운 고려시대 대표적 인물로

 

이암과 이색을 꼽는다...논하고자 역사와 관계 없어 보이지만

 

이암은 이색에게 선가의 다도를 나누면서 유불선 삼도의 가르침을

 

함께 나누지 않았을까...

 

실제로 이색 또한 유불선에 박학한 인물이었다.

 

참고로 이색은 한산이씨로 이암과 본관은 다르다.

 

성리학자 지만 고려말 불교를 탄압했던 세태와 상관 없이 그는

 

불교를 존중해주었고,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3091508391&code=900308

 

죽기전 마지막 가는길도 신륵사를 향하던 길에 죽었다고 한다.

 

고려말 이성계와 정도전을 필두로 해서 조선이 세워지는데

 

그때 조선의 신하가 되기를 거부한 고려의 신하 72명을

 

두문동 72현이라 부른다...

 

이색과 활발히 교류 했던 72현의 운곡 원천석 그는 환단고기 삼성기 하 편의 저자 원동중으로

 

그리고 북부여기의 저자 복애거사 범장은 역시 두문동 72현 이었던 범세동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범세동 또한 이색, 원동중 등과 활발히 교류 했고,

 

유불선을 함께 통한 인물이다.

 

 

이렇게 크게 이암, 그리고 이색...두 사람의 학맥(學脈), 연맥(連脈), 혈맥(血脈) 다시말해

 

연원이 어떻게 흘러 지금에 이르는지 되짚어 보고 싶다...

 

이암은 사상은 대대로 집안을 통해 전해진다...조선시대 이맥을 통해 태백일사로

 

그 맥을 확인 할 수 있고...그리고 그것이 다시 이기와 이유립으로 이어진다.

 

 

 

 

 

계연수가 한데 모은 환단고기가 이유립에게 전해지고 이것이

 

세상에 나오게 되는데

 

유불선 삼도의 근원인 신교의 뿌리를

 

고성이씨 집안에 의해 환단고기에서 진면목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환단고기는 9200년 우리 민족의 역사과 국통맥을

 

명확하게 밝혀주고 있다.

 

 

그래..그럼 또 한 맥은 어떻게 전달 되는가...

 

바로 이색계통을 통해서다....

 

이번에는 거꾸로 올라가 보자...

 

100여년전...유불선을 아우르는 대도가 이땅에 출현한다...

 

최수운의 동학 말이다...

 

선을 바탕으로 우리고유의 도를 되살리게 되는데 무론 천상문답사건을 통해

 

상제님께 대도를 받은 것이지만 그의 과거가 없었다면 선택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스승은 누구인가...

 

바로 베일에 쌓여져 있는 연담 이운규 선생인데 그는 세명의 저자를 뒀다...

 

그중의 한명이 최수운이고, 그리고 김광화와 일부 김항 선생을 길렀다.

 

재미있는건...최수운에게는 선도를 맡겼고...김일부에게는 유교...구체적으로 보면 역도(易道)

 

그리고 김광화에게는 불교. 김광화는 이를 바탕으로 미륵사상이 가미된 남학을 창시한다...

 

그리고 김일부는 개벽이후 도래할 후천의 팔괘인 정역팔괘를 그림으로서

 

후천이 오는 이론적, 다시말해 역학적 이론을 정립했다.

 

재미있지 않은가...한 인물이 세 제자에게 유, 불, 선 의 정수를 각기 깨우치도록 했다...

 

그리고 그 유불선의 결론을 개벽으로 포커스로 맞춘다.

 

 

동학은 죽으나 사나 다시개벽을 외쳣고,

 

김일부도 후천개벽이 오기에 앞서 그 원리를 밝힌 것이고...

 

김광화 또한 미륵불이 도래하는 후천개벽을 노래했다...

 

 

이운규에 대해서는 그외에는 알려진게 많지 않다...

 

하지만 그의 세 제자를 통해 그가 유불선에 완전히 통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 땅에 하나님이 오시고, 그 이후 후천개벽이 올것이라는 것을

 

세 제자에게 직접 가르쳤을 거라는 것은 명백하다.

 

 

다만 그의 스승은 이서구로 아려져 있는데 우의정까지 지낸 인물인데

 

이서구 또한 이운규 처럼 알려져 있는 사실이 많지가 않다.

 

다만 야사라고 해야 할까...후천개벽이 도래하는 상황을 은유적으로 노래한

 

춘산 채지가 라는 비결이 이서구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찌 되었건 이서구의 스승은 우리가 잘 알 있는 연암 박지원이다...

 

박지원은 박제가 홍대용등과 함께 북학 파를 이끌었는데 성리학 사회였던

 

당시의 시대상과 상반되게 일명 실학을 통해 굶주린 백성의  고통을 나누고자했다.

 

실학자라 불리는 이들은 토정 이지함의 사상으로 부터 계승 되었다.

 

 

http://blog.naver.com/uniflower/140014056866

 

 

직접적인 학통맥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박제가는 북학의에서 직접적으로 이지함을 거론했고

 

박지원은 허생전에서 이지함을 롤 모델로 삼고 있다.

 

이렇듯 북학 계열의 실학자들은 이지함의 학통을 잇고 있는데

 

토정 이지함은 다들 알고 계실 것이다.

 

소설 토정비결의 주인공이자 토정비결의 저자이기도 한 토정 이지함 선생

 

그는 소강절의 원회운세론에 달통했던 화담 서경덕의 제자 이기도 한데.

 

중요한간 그가 한산이씨라는 점이다.

 

이색과 같은 한산이씨인 이지함은 이색의 6세손 혹은 7세손 이라고 한다.

 

왜 의견이 엇갈리는지 까지는 확인 하지 못했지만.

 

중요한건 그가 이색의 후손이고 화담의 영향도 크겠지만

 

집안의 학통을 이었음이 확실하다.

 

 

정리해보면 행촌 이암 - 목은 이색 - 토정 이지함 - 연암 박지원 - 이서구 -  이운규 - 수운 최제우 

                                                                                                                - 일부 김항

                                                                                                                - 광화 김치인

 

 

최치원의 후손으로 그의 예언대로 최치원 사후 현묘지도를 동학으로서 복원했던 최제우

 

그러나 동학은 수운 선생 사후 교리가 변질 되어 갔다.

 

2대교주 최시형은 시천주를 양천주로 고쳤고,

 

3대교주 손병희는 양천주를 다시 인내천 으로 고쳤다.

 

인내천은 어찌 보면 시천주와 비슷해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댜 보면 전혀다르다.

 

인내천의 하늘은 인격화된 신 상제가 아닌 관념적인 하늘에 가깝다.

 

마치 공자의 유교에서 하늘이  상제를 의미하다가

 

주자학, 성리학으로 변화되면서 관념적 의미로 변화되어갔던 것처럼

 

동학도 신과 멀어지면서 유교의 전철을 답습해 버렸다.

 

 

그러나 유불선 삼도가 합일된...본래의 도...풍류 혹은 수두교, 혹은 신교 뭐라 부르든 좋다.

 

천부경의 귀결을 빌리자면 집일함삼(執一含三)된 본래의 도.

 

그 도는 다시 회삼귀일(會三歸一) 해야 한다.

 

그러나 동학은 실패했다.

 

하지만 그 정신이, 그 맥이 완전히 끊어 진 것은 아니다.

 

동학은 최제우가 죽기 전에 남긴 짧은 유언

 

'더디도다 더디도다 만고없는 무극대운 8년이 더디도다.

 

전 40은 나려니와 후 40은 누구련가'

 

그가 예언한후 8년..햇수로 9년후 그가 예언한 대선생이

 

내려오시고, 실패학 동학의 뒤를 이어

 

무극대도, 참동학을 펴신다...

 

수운이 펼치고자 했으나 한계에 부딪혀 실패했고,

 

김일부 대성사가 완수한 후천 정역 팔괘를 받으시고,

 

전주 풍남문에서 첫 공사를 보실때 실패한 남학에서 즐겨부르던 가사를 부르기도 했던.

 

참동학...

 

그 계통을 있고, 잃어버린 역사와 한민족의 정신문화를 되찾기 위해

 

오랜 시간에 걸쳐 환단고기를 역주해

 

잃어버린 민족적신을 복원 하기도 한 곳.

 

유.불.선.으로  나뉘어졌지만 본래 하나였던....

 

진정한 참동학의 가르침이 궁금 하신분은

 

비밀 덧글로 이메일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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