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카's 역사기행

원주 운곡 원천석 선생 묘터 참배

캬라멜모카라떼 2014. 12. 9.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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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 삼성기 하편의 저자는 원동중으로 알려져있다.

 

이부분에 대한 시시비비로 한때 위서 논란이 되는

 

부분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환단고기 역주본 발간 이후에 위서 논라는

 

거의 수그러 들었다고 할 수 있는데

 

아직 원동중이라는 분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어 아직은 의문점을 남기고 있다.

 

 

<운곡 원천석>

 

다만 원주 원씨 집안에 원동중이 원천석이다라는

 

설이 전해져 낼려온다고 한다.

 

그래서 원동중이 고려말 대학자였던 운곡 원천석 선생이

 

맞을지도 모르는 생각에 원주에 있는 원천석 선생의 묘터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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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운곡원천석묘역 / 문화유적

주소
강원 원주시 행구동 산 37번지
전화
033-737-2111
설명
원주운곡원천석묘역

 

 

묘터를 찾아보니 묘터관리가 생각보다 잘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묘터 아래에는 찾기 쉽게 비석도 세워 놓았다.

 

 

묘터 아래에는 사람은 없는 듯 했으나

 

(사) 운곡학회의 사무실도 존재했다.

 

 

 

 

 

 

운곡 원천석 선생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는데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고 한다.

 

고려말 나라 잃은 슬픔을 담은 회고가로 유명하시다고 한다.

 

 

 

<회고가>

 

興亡(흥망)이 有數(유수)하니 滿月臺(만월대)도 秋草(추초)로다

五百年王業(오백년왕업)이 牧笛(목적)에 부첬으니

夕陽(석양)에 지나는 客(객)이 눈물겨워 하노라

 

 

 

 

 

 

 

그리고 묘터를 따라 올라가는 길에는 운곡선생의 필적과 행적이

 

담긴 운곡시서와 태종대등의사진과 설명이 전시되어있다...

 

 

 

<운곡시사>

 

<창의사>

 

창의사는 묘터 바로 옆에 지어져 있고

 

선생의 위패를 모시는 곳이다.

 

<칠봉서원>

 

 

<태종대>

 

선생은 한때 태종의 스승을 지내기도 했다고 한다.

 

태종이 훗날 원천석을 등용하기 위해 삼고초려하지만

 

원천석은 끝끝내 조선의 신하가 되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매봉서원>

 

 

원래 최근에 눈이 와서 안내판이 다 이렇게

 

눈으로 덮여 있던 것을

 

하나하나 쓸어 내려서 내용을 확인했다.

 

<사양선원>

 

 

 

그리고 여기가 바로

 

선생의 묘터다...

 

비석 아래 부분이 바로 내리막이라

 

제를 지내기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상가상 눈까지 내려 매우 미끄러운 상태였다.

 

 

 

 

 검게 바랜 선생의 묘비가 왠지 쓸쓸해 보였다...

 

 

선생은 죽기전에 아들에게

 

6권의 역사책을 주었다고 한다...

 

사후에 아들이 그 책을 보았다는데

 

고려의 쇄망과 조선의 건국사가 담겨 있었다고 한다.

 

 

 

 

 

묘 옆에 세워져 있는 묘갈이라고 한다...

 

 

 

안내판에 보니 1670년 3월 허목이라는 분이 짓고

 

이명은 이라는분이 쓴것이라고 한다.

 

 

 

 

글씨는 선명히 남아 있는데...

 

해석이 안되어

 

다른분이 해석해서 올린것이 없나 찾아보았다.

 

 

 

<창의사 전경>

 

  

 

 

회고가가 씌여진 시비

 

 

원천석 선생은 죽기전에 조선의 건국 야사가 담긴

 

책 6권을 지어 후손에게 절대 열어보지

 

못하게 했는데 증손이 그것을 열어본뒤

 

잘못하면 멸문지화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 책을 불살랐다고 한다.

 

혹은 어딘가에 숨겨놓았다는 글도 보인다...

 

 

사서를 6권이나 저술 했다는 것은

 

그만큼 원천석 선생의 민족정신이 투철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후손에게 비밀리에 전해준 것이 6권이라는 것은

 

다른 저술이 또 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목은 이색 등과 활발히 교류 했고

 

복애 범세동과 화해사전을 집필하기도 했다.

 

 

<화해사전>

 

 

범세동은 누구인가...

 

바로 환단고기 북부여기의 저자 복애거사 범장 아니던가.

 

범세동 또한 원천석 처럼

 

고려가 망하자 은둔했던 인물이다.

 

둘이 교류 했다는 것은 운곡도

 

범세동처럼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했고

 

특히 우리 상고사에 밝았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러한 추정만으로 원천석 선생이 원동중이 맞을까 하는

 

의문에 마침표를 찍을 수는 없을 것이다.

 

 

원천선 선생은 누군가의 추측처럼

 

자신의 저서들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가명을 썼을지도 모른다.

 

 

<원동중>  자에는 감독하다는 의미와 함께

 

거두다, 간직하다, 견고하다, 묻다, 감추다 등의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이 글자에 원천석 선생은

 

우리의 상고사를 가슴속에 묻지만 반드시

 

간직해야만 하는 어떤 사명감을 담지는 않았을까...

 

 

나는 확신한다.

 

운곡 선생이 나를 이곳에 오도록 한 이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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